초기창업패키지, 떨어졌다.

5천만 원이 이렇게 쉽게 올 리가 없지. 맞다, 없었다.

Jun Noh

이번 주 수요일, 3일 전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기창업패키지 서류 발표가 났다.

결과는 “선정되지 않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하대학교의 메일이고 문자였는데, 알림이 온 순간 본능이 알았는지…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사실 서류 합격자 발표가 작년과 대조해서 많이 늦어지길래.. 마음은 이미 알아챘던 거 같다.

갑자기 내 사업 계획서의 미흡한 점이 보이고.. 주관기관 선택도 전략이라는 글들도 마구 눈에 띄면서,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애송이였다는 걸.. 깨달으면서 기대감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내 사업계획서 잘 썼어… MVP도 이미 나왔고 아이디어도 훌륭해. 분명히 알아볼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 사살을 당하니, 마음이 아팠다.

발표를 확인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감정은 슬픔도, 아쉬움도 아닌 분노였다.

사업계획서 띡 제출하고 “이제 지원금 들어오면 본격적으로 해야지~” 라고 안일하게 여유를 부리던 내 자신을 향한 분노, 한 달이라는 피 같은 시간을 날린 게으름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그 날 저녁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어서 진짜 오랜만에 아침 운동이 아닌 저녁 8시에 밥도 거르고 복싱장에 가서, 쉬지도 않고 미친듯이 쏟아내면서 운동을 했다. (그러니 속은 후련하더라…)

근데 웃긴게, 그러고 나니까 보이더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내 미흡했던 점들이..

그래서 바로 인하대에 메일을 보내 평가 의견서를 요청했고, 방금 그 피드백을 받았다.

경제적 습관 형성을 위해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게임 결합 아이디어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제시된 사업과 관련하여 고객 니즈 및 사업화를 위한 기술검증(PoC)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와 경쟁사 대비 차별적 요소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 AI 검증형 소셜 투자 플랫폼의 특성상 금융 분야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도 확보가 중요한 사업 환경으로 판단되며 고객 확보 전략에 대한 보다 정교한 분석이 요구된다.

처음엔 “아 뭐라는거야… 걍 이것도 AI 쳐 돌린거네…” 라고 생각했다.

근데 구구절절… 내 사업계획서가 가지지 못한, 개발만 할 줄 아는 1인 개발자 무지랭이가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시각으로 내 프로젝트를 바라본 피드백 내용이었다.

그래서 뭐가 문제였나?

냉정하게 뜯어봤다.

내 사업계획서의 “실현 가능성” 섹션은 꽤 강했다.

MVP 100% 완료. 즉시 시연 가능. 5년 차 풀스택. 보안기사.

나는 내가 뭘 만들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 온 힘을 썼다.

근데 평가위원들이 보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서비스가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쓰게 될 것인가?”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

1. PoC가 없었다

사업계획서에 클로즈 베타 테스트 계획을 26.02 ~ 26.03으로 적었다.

즉, “할 예정”이지 “했다”가 아니었다.

평가위원 입장에선 실제 유저 반응이 한 건도 없는 상태였던 거다.

근데… 솔직히 이건 좀 억울하다.

사업 계획서인데, 아직 론칭 전인 서비스가 베타 테스트 계획을 적는게 뭐가 이상한가?

‘사업계획서’라는 이름 자체가 앞으로 할 계획을 쓰는 문서 아닌가?

이해가 잘 안 됐다.

…근데 생각해보면, 요즘 초기창업패키지 경쟁률이 보통 10:1을 넘는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일종의 투자다. 5천만 원짜리.

같은 점수면 당연히 “이미 검증이 된 쪽”에 손을 들어주지 않겠나.

억울하긴 한데… 그들 나름의 기준은 있었던 거다.

2. 주장은 있는데 숫자가 없었다

내 사업계획서는 “챌린저스 같은 기존 앱은 리텐션이 급락한다.” 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나도 얼마 하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근거가 없었다.

실제 앱스토어 리뷰 분석이나 공개된 리텐션 지표를 인용했어야 했다.

그냥 내 주관으로 경쟁사를 까는 글이 되어버린 거다.

3. 수익 모델이 ‘방향’만 있었다

프리미엄 아이템 판매, 크리에이터 마켓플레이스, B2B 스폰서십.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어느 것 하나 “1년에 얼마를 벌겠다”는 숫자가 없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그냥 꿈 이야기다.

“아이가 커서 의사랑 판사랑 변호사가 될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4. 고객 확보 전략이 너무 뻔했다

“숏폼 마케팅 + 인플루언서 협업으로 바이럴.”

전국 만 개의 사업 계획서 절반에 이 문장이 들어가 있을 거다.

내가 쓴 오픈채팅방 50개소 체험단 모집 계획은 그나마 구체적이었는데, “주마다 몇 명, 언제까지 1,000명” 이라는 마일스톤이 없었다.

방향만 있고 이정표가 없는 지도였다.

5. ESG는… 뭔지도 몰랐다

평가 의견서에 ESG 보완 요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업계획서 쓰면서 ESG 항목을 따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사회적 가치” 섹션에 “청년 세대 성취 문화 조성”이라고 썼다.

그게 ESG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세 축에서 측정 가능한 지표가 필요했다.

몰랐다. 그냥 몰랐다.

아이템이 아니라, 나의 언어가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ZuZoo라는 아이템이 나빠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성취 동기를 증권화한다는 로직은 탄탄하다.

“친구가 내 주주가 된다”는 소셜 메커니즘은 챌린저스와 확실히 다르다.

MVP도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5년 동안 코드만 짰다.

비즈니스 계획서라는 장르를 처음 써봤고, 그 언어를 몰랐다.

다음엔 어떻게?

복싱장에서 땀을 다 쏟아내고 나니, 오히려 다음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였다.

첫째. Rive를 버린다.

결국 내가 지원사업을 알아본 진짜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였고, 그 돈이 필요했던 이유가 Rive 애니메이션 퀄리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Rive는 캐릭터 한 종을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크다.

그냥 인정한다. Rive 포기.

대신 미드저니로 스프라이트 시트를 뽑는다.

퀄리티는 조금 양보하더라도 캐릭터 양산 속도에 집중한다.

둘째. UGC는 나중이다. 지금은 가챠다.

UGC(유저 제작 콘텐츠)는 사람이 충분히 많아야 돈이 되는 구조다.

지금 당장 유저가 없는 상황에서 마켓플레이스를 키우겠다는 건, 사람도 없는 가게에 진열대부터 들여놓는 꼴이다.

방향을 바꾼다. 수집형 가챠. 사람의 수집 욕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력하다.

캐릭터를 잔뜩 만들어놓고, 뽑는 재미를 먼저 제공한다.

셋째. 경쟁사 분석을 제대로 한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지금까지 경쟁사 분석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이유? 두려워서다.

혹시 내 아이디어가 이미 다 나와있으면 어쩌지…

그 두려움에 일부러 눈을 감아왔다. 보면 김샐까봐.

멍청한 짓이었다.

경쟁사를 몰라야 내가 지는 거였다.

넷째. “숫자”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지금까지 코드를 설명하는 것만 익숙했다.

근데 투자자나 심사위원한테는 MAU, ARPU, BEP, CAC… 이 숫자들이 코드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 언어를 배울 때가 됐다.


이번 탈락이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뭐, 나쁘지.. 나쁜건 맞는데…ㅋㅋㅋ)

솔직히 사업계획서를 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였다.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고, 멋지게 엑싯하고, 다음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

그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으로 바뀌는 낙폭도 컸다.

그 허탈감이… 솔직히 좀 많이 컸다.

근데 또, 잿더미 속에서 뒤져보니까 반짝이는 게 한두 개는 있더라.

내 프로젝트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꾸며야 “비즈니스” 하시는 양반들이 좋게 보는지.

그거 하나는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다.

개발자의 언어와 사업가의 언어는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내 언어로만 말해왔고, 그걸 모두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줄 알았다.

다음엔 그 사람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그냥, 합리화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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