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코스프레를 멈추다: 실패를 쿨하게 까발리기로 한 이유

0명의 DAU와 텅 빈 웹사이트. 스타트업 코스프레는 접고, 이제는 그냥 삼류 개발자의 실패와 개발 기록이나 쓰려고 한다.

Jun Noh

또 일주일을 쉬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정이었다고 핑계야 댈 수 있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1인 개발자의 현실, 혹은 나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넘치던 자신감과 추진력은 서서히 깎여나가고,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내면,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열광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한두 달 밤잠을 줄여가며 코드를 짜고 기대감에 부풀어 릴리즈를 해도, 이 넓은 인터넷 세상은 내 결과물에 단 1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AI를 활용해서 기깔나게 마케팅을 해보면 다를까 싶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만든 서비스에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어졌다. 누군가의 날 선 비판이나 손가락질을 버텨낼 맷집이 없어서 자꾸만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호기롭게 퇴사하며 친구들에게 선언했던 멋진 모습과 달리, 제대로 해보겠다며 며칠을 매달려 쓴 지원 사업은 탈락했다.

월급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진 자리에 마이너스로 찍히는 AWS 고지서가 날아오자 심리적인 압박감은 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기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려고 한다.

안 된 건 안 된 거다.

빈 껍데기를 붙잡고 있어 봤자 서버비만 나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실패들을 아주 솔직하게 마주하기로 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거창한 옷

지금의 SlowFlowSoft 웹사이트를 보고 있으면, 한마디로 내 몸에 전혀 맞지 않는 거창한 옷을 억지로 껴입은 기분이다.

“우리가 당신의 일상에 리듬을 만듭니다”

뭔 ㅋㅋㅋ 같잖은 멘트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듯한 멘트들로 스타트업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현실의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정확히 0명이다.

번지르르한 겉포장과 처참한 실제 결과물 사이의 괴리감.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스스로 당당해지기는커녕 자꾸만 위축되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사업자인데 뭐라도 돌아가는 서비스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돌이켜보면 다 보여주기식이었다.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며 친구들에게 했던 선언들.

그 알량한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아무도 쓰지 않는 망한 서비스에 매달 피 같은 서버비를 붓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건, 그럴싸한 껍데기에 집착하느라 정작 내가 진짜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들이 다 가려졌다는 거다.

혼자서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 인프라까지 맨땅에 헤딩하며 뒹굴었던 그 진짜 ‘엔지니어링 과정’은 이 번지르르한 웹사이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겉멋은 쫙 빼기로 했다.

새로운 웹사이트의 테마는 정해졌다.

AI 시대에 해고당한 것도 아니고 제 발로 걸어 나온 삼류 개발자의 처절한 생존기다.

디자인도 화려한 애니메이션은 다 걷어내버릴 거다.

딱딱한 GitHub 다크 테마에 옛날 네이버 블로그 특유의 투박하고 날것 같은 느낌을 섞어볼 생각이다. 코드가 날것이듯, 내 실패도 날것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1. 망한 프로젝트들의 ‘묘지’

우선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위한 무덤을 만든다. 트래픽 0명인 babple이나 Self Standup 같은 서비스들은 당장 가차 없이 서버를 내릴 거다.

그리고 사이트에는 당당하게 뱃지를 하나 달아둘 거다.

RIP 사유: 트래픽 0명, 개쳐망한 운영 능력으로 인한 폐기

2. 랜딩 페이지 대신 ‘부검 리포트’

화려한 서비스 랜딩 페이지가 있던 자리에는 부검 리포트를 전면 배치한다. 서비스가 왜 망했는지, 혼자 개발하며 어떤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고 어떻게 에러 로그들과 밤을 새며 싸웠는지. 그 치열했던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GitHub Readme만 덩그러니 남겨둘 거다.

어설프게 성공한 척 포장하는 것보다, 실패를 쿨하게 까발리는 게 오히려 언젠가 만날 면접관이나 방문자들에게 훨씬 더 단단한 신뢰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3. 무덤 옆에서 굴러가는 뻘짓들

그리고 이 묘지 옆에는,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가는 과정을 증명해 둘 거다.

지원 사업에서 시원하게 떨어진 프로젝트지만, 멈추지 않고 70개의 2D 캐릭터 스프라이트 시트를 찍어내며 화면 단을 전부 갈아엎고 있는 지금의 뻘짓들. 거기에 보험이라고 말은 하지만 내 지식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자격증 공부 과정까지.


결과물은 처참하게 망한 삼류일지언정, 기술력과 맷집만큼은 일류를 향해 가고 있는 개발자라는 걸 증명하는 공간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스타트업 놀이는 그만하자.

난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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