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주름"
혹,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가. 삶이, 환하던가.
돌이켜보면 나는 책을 읽고, 블로그에 그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했다.
군대에서도, 알바 점심시간 카페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가방에 물건 넣듯 문장을 챙겨 그대로 블로그에 옮겨 담았다.
특히나 현대 문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
김려령, 최진영, 박완서, 김훈, 신경숙 등…
쓰는 단어는 같은데 만들어내는 문장들이 너무… 깊이가 있고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그냥, 한때 지나가는 취미였다.
그래도 어느 시점까지는 꾸준하게 글을 썼던 거 같다. 복학을 하면서부터 현대 문학보다는 전공책 읽을 일이 많아졌고, 아마 그 즈음에 그만뒀던 거 같다.
그 뒤로는 뭐… 지금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음침한 공간에서 개발이 어쩌구 AI 가 어쩌구 하는 글만 써대고 있다.
그러다 굉장히 오랜만에, 예제 코드나 문제 풀이가 가득한 IT 관련 도서가 아닌 현대 문학을 읽었다.
오늘은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간만에 문과 감성을 불러오려고 해서 그런지, 아니면 방금 막 책을 덮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 문체가 너무나도 독후감 말투 같다. 뭐, 아무튼.
박범신의 “주름”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책의 초반은 여느 도입부와 같이, 무난하게 흘러갔으니까.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50대 가장이자 대기업 자금 관리 이사였던 김진영이라는 남자가 — 자신이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의 삶” 을 살아내느라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연상의 여인, 천예린이라는 시인을 만나 진정한 의미의 인생을 알게 되는. 어찌 보면 뻔한 노년의 늦바람 사랑 이야기.
초반부를 넘기면서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지?
너무나… 부도덕하다.
천예린은 이미 한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 그대로 살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를 갈망하는 남자들이 있었고, 원할 때 만나 사랑을 나눴다. 좋아하는 시를 업으로 삼았고, 이미 꽤 유명한 시인이었다.
김진영은 달랐다.
결혼도 했고 이미 대학에 간 자녀도 있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소원했지만 그렇다고 가정에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다만 직장과 가정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라는 질문이 드는 찰나였다.
천예린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쯤 지쳐있는 김진영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다가갔을 때, 김진영이 어떻게 파멸할지를 — 이미 알고 있었다.
결코 웃으며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박범신 작가의 표현력에 — 읽다가 역겹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부도덕한 노년의 사랑 이야기는 — 소설이 나왔을 당시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꽤 뻔한 스토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았다.
너무 날것의 표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는 감탄했다.
천예린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김진영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갈망하는 김진영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김진영은 그걸 알면서도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기꺼이 쓰인다.
그녀를 쫓아 — 가진 모든 부와 명성, 헌신적이었던 아내와 죄 없는 아이들까지 버린다.
자신이 평생 모르고 살 뻔했던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그녀를 쫓아가면서 찾으려고 했다.
작가는 책의 제목인 “주름” 을 시간의 주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의미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서 한참 생각했다.
시간은 우리를 주름지게 하고, 주름은 우리를 변하게 한다.
소설은 김진영과 천예린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 시간이 흐르고, 천예린에게는 “죽음” 이라는 존재가, 김진영에게는 “천예린” 이라는 진정한 사랑이 그들을 주름지게 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하게 한다.
둘은 시작부터가 너무 달라서, 이 시간의 주름은 그들을 한순간은 완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했다가, 마지막에는 또 반대를 바라보게 한다.
이게 작가의 의도와 같은 해석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겐 그렇게 읽혔다.
맘에 든 문장?
사실 몇 개 더 있지만, 나머지들은 마지막 문단에 와서야 “아!” 하고 깨닫는 느낌이라… 아래 두 개만 적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적기 좀 그렇다. ㅋㅋㅋ
이제 말이야, 내 등 뒤에 유령처럼 서 있는 나의 옛꿈을 찾아갈 거라고. 유령처럼 서 있는 옛꿈. 당신 눈엔 그게 안 보여? 유령처럼 당신 등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옛꿈 말이야.
내 자아라고 생각했지만, 기실 사회구조 속에서 훈련받은 가짜 자아, 그 허위를 깻박치고, 평생 억눌려 있던 본질적인 나의 다른 자아를, 그녀는 부드럽게 끌어내어 동등한 우의로 그것을 존중해주었다. 내가 수치스럽다고 여기어 한사코 폐기 처분 했던 본능을 존중해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을 뿐 아니라,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대등하게 그것을 받아들여주었다. 그것은 내가 일찍이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이었다.
마치며
거의 7년 만에 쓰는 독후감이라 뭐 제대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문학 알지도 못하는 놈이 쓴 그저 그런 소설 리뷰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별로 추천하는 책은 아니다.
박범신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가 “은교” 라는 사실을 알고 — “아, 그래서..”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너무 날것의 표현이 많고, 어쩌면 비판받아야 마땅한 그런 이야기니까.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정말 읽기 힘든 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난 개인적으로 꽤나 빠져들어서 읽었고 마지막에는 감탄했다.
마침. (독서는 읽고 나서가 더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