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스포) 영화: "군체" 후기
한국 좀비 영화치고는 괜찮다 -> 이거 칭찬 아님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주말 영화관 나들이를 갔다 왔다.
그냥 어제부터 앱스토어 심사가 IAP 때문에 한 5번 정도 “안돼. 돌아가” 당하니까,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달달한 팝콘이나 먹으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뭐가 상영관에 걸려있나.. 를 보니까.
호프나 스파이더맨 같은 굵직한 기대작들은 아직이고.. 딱 이 타이밍에 나온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도 없길래 아직 보지 않았던 “군체” 를 예매했다.
참신한 소재
소재는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점점 똑똑해지는 좀비. 생각만 해도 파훼할 방법이 없다.
뭐, 네발로 기어다니면서 눈 앞에서 문을 닫고 들어가면 시야에 없다고 추격을 멈추던 좀비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방금 있었던 일, 냄새나 특징을 “기억” 한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고 말하는 법을 배우듯이 점점 똑똑해진다.
새로 감염된 개체는 바로 이전 개체들의 기억을 이어 받고 그대로 행동하는데… 이걸 이길 수 있나? 싶었다.
그래서 소재 자체는 매우 참신했다고 봤다.
개미 페로몬으로 생각을 공유하듯이 좀비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움직인다는 컨셉이 — 요즘 AI 시대에 알고리즘이 개인 판단을 대체하는 걸 은유했다는 해석도 있던데, 그럴 듯했다.
캐릭터
뭐든 영화는 어떤 공식과도 같은 캐릭터 구성이 있다. 그건 맞는데, 이 “군체” 속 캐릭터들은 소위 말하는 “한국 좀비 영화 템플릿 구성” 에서 단 1g의 개성도, 캐릭터성도 가지고 있질 않다.
거기다가 너무 과도할 정도로 컨셉질을 해대서 “무서우면 저럴 수 있지, 이기적일 수 있지..” 가 아니라 “ㅋㅋㅋㅋ 뭔 ㅈㄹ이냐” 정도로 몰입을 깨버리는 장면들도 있었다.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어, 그래그래 형은 쓸데없이 이타심 부리다가 죽을 거야” 가 캐릭터를 보자마자 떠오르고.
“ㅇㅇ… 나 끝까지 발암짓만 하다가 누구 하나랑 같이 죽을 거임” 하면 진짜 그런다.
그냥 예상을 빗나가는 플롯, 캐릭터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
뭐 어떻게 보면 캐릭터성이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개연성
난 사실, 지루한 영화도 굉장히 잘 보고 영화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없다고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니까.
근데 내가 딱 한 가지 절대 용납 못하는 게 있다.
“설득이 안 되면 안 된다.”
등장인물의 어떤 행동이나 특정 사건, 더 나아가 결말까지.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끊임 없는 영화 안의 장치들로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 얘는 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기억이 있어서 물을 무서워하는구나” 같은 거.
우린 이걸 “개연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군체”에는 그 개연성이라는 게 너무..너무너무 부족하다.
“엥, 영화적 허용 몰라요?” 라고 하기에는 억지를 너무 부렸다.
몰입이 확 깨지던 몇 가지 시점을 이야기해보면
첫 번째는 육상을 했다던 아저씨. 본인이 왕년에 육상을 했든 뭘 했든… 뭔 아무 배경도, 캐릭터 설명도 안 해놓고 바로 “오, 님들 저 빠름. 제가 님들을 위해 목숨 다 내놓고 갔다 오겠음.” 하는데 뭔… ㅋㅋㅋ
두 번째는 관객 고구마 먹으라고 넣어놓은 개 발암캐릭터 여고생이었는데, 얜 그냥 존재 자체가 개연성 브레이커다. 무슨 행동 하나하나가 다 생존의 정반대로 가는데,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재난 상황에서 절대 정상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결말 자체가 또 하나의 개연성 박살난 부분인데, 이건 마지막에 다루려고 한다.
좋았던 점
그럼에도 좋았던 점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소재 자체는 굉장히 참신했고 지창욱과 누나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애틋했던 누나의 죽음으로 흑화해서 좀비들이 아닌 생존자들을 다 죽여버리려고 히어로 액션물을 찍던데, 나는 이 부분은 굉장히 참신해서 좋게 봤다.
감정선도 충분히 설득도 되고 몰입이 돼서.. 난 차라리 지창욱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영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전지현과 구교환의 개억지 악연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대치가 됐을 거 같다.
결말
결말은 걍 개 쓰레기 같았다.
“이..이게 뭐예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설득도 이해도 전혀 안 되는 결말이었다.
무엇보다, 운전도 하고 총도 쏘던 좀비들이 옷 하나 구분 못해서 허둥지둥 하는 것도 참 웃겼고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갑자기 좀비들 지능이 초기화되고 지 주인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됐는데 그거에 대한 설명이나 떡밥은 1도 없었다.
불완전한 집단 같은 걸 보여주려고 했으면, 이야기 중간중간에 말 안 듣는 좀비들이나 멍청하게 다시 초기화되는 부분을 보여줬어야 했지 싶다.
난 설득이 안 되는 결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게 딱 그런 결말이었다.
마치며
솔직히 좀 세게 씹은 감은 있는데, 이게 500만 넘게 든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좀 신기하다.
내가 유독 예민하게 본 건가 싶어서 다른 사람들 후기도 좀 뒤져봤는데 — 결국 지적되는 부분들이 다 비슷했다. 소재는 참신한데 각본이 못 받쳐준다는 것.
연상호 감독이 15년 동안 “집단이 개인을 삼키는 이야기” 를 파왔다는데, 이번이 그 종착지라고들 한다. 근데 종착지가 이거면 좀 슬프고, 부산행 나온 지 10년인데 한국 좀비 영화의 스토리 템플릿이 진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 게 진짜 신기하다.
소재는 2026년, 각본은 2016년.
이 정도로 마무리.
암튼, 팝콘 잘 먹었고 스트레스 풀 겸 갔던 거니까 목적은 달성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