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은 필수인가?
할 게 산더미인데 쉬어도 될까? 죄책감을 좀 덜고자 찾아본 뇌과학적 핑계.
올해 안에 내 서비스 알파 버전 띄우겠다고 너무 몰아붙인 건가…
뒤돌아 보니까, 지난 두 달 동안 진짜 미친놈처럼 살았다.
아침 6시 반 기상, 개인 개발 2시간. 출근해서 회사 일 쳐내고, 퇴근하면 또 새벽 1시까지 내 거 만들고. 주말? 그런 거 없었다. 그냥 눈 뜨면 모니터 앞이었다.
힘들 줄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회사 일 8시간 하는 것보다 내 거 10시간 하는 게 덜 힘들게 느껴졌으니까.
요즘 꽤나 예민한 길고양이였다
근데 몸은 거짓말을 안 하더라. 요 근래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 나쁜 편두통이 있고, 뇌에 브레인 포그가 낀 것처럼 멍했다.
평소 같으면 “아, 네네~” 하고 넘길 일들도, 속에서는 “아 씨, 저걸 확…” 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말도 곱게 안 나가고, 표정은 이미 썩어있고.
나도 알았다. 근데 그냥 배포 앞두고 예민해서 그렇겠지, 시간 없어서 조바심 나서 그렇겠지 했다.
근데 오늘 아침, 기어이 사달이 났다.
눈을 뜨는데 평소랑 다른 묵직한 두통이 찾아왔다.
(요즘 뭐… 저녁에 술을 좀 마시긴 했는데, 다른 느낌이었다.)
“아, 오늘은 진짜 안 되겠다.”
마침 점심에 부모님 뵙기로 한 날이기도 하고… “아 몰라~” 시전 하고 아예 내 방 문을 닫아버렸다.
런칭이고 나발이고, 오늘 하루는 그냥 주말이다. (실제로 일요일이기도 하고.)
소파에 누워서 귤이나 까먹으며 든 생각
부모님 만나서 밥 먹고, 코스트코 가서 카트 끌고 돌아다녔다.
사람 바글바글한 데서 치이고, 핫도그랑 피자 냄새 맡으니까 좀 살 것 같더라.
저녁엔 와이프랑 소파에 누워서 <아바타> 전편을 다시 봤다. 3편 나온다길래 복습 차원에서.
근데 참 웃긴 게, 코드 한 줄 안 짜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면 불안해서 미쳐버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면서 꽉 막혀 있던 변기가 뚫린 것처럼 속이 쏵 내려갔다.
요즘 가슴 한구석이 꽉 막혀서 답답하던 게 싹 사라졌다.
그제야 생각했다.
아 이게, “쉬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날”이 필요한거였나?
이게 다 과학적인 이유가 있나? 있네?
근데 또 궁금하니까 “왜 쉬니까 머리가 더 잘 돌아가지?” 유튜브랑 구글링 좀 해봤다.
나 핑계대기 좋으라고 뇌과학자 형님들이 아주 기막힌 핑계들을 만들어 놨더라.
1. 멍 때리는 건 ‘백그라운드 프로세싱’이다 (DMN)
우리는 흔히 멍 때리고 있으면 뇌가 Shutdown 된 줄 아는데, 그게 아니란다.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따로 있단다.
그게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다.
이게 골 때리는 게, 우리가 쉴 때 뇌가 노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의식적인 활동(코딩, 업무)을 멈췄을 때, 뇌는 그제야 밀린 데이터 처리를 시작한다.
- 집중 모드: 외부 정보 입력(Input)에 바쁨. 정작 연결은 잘 안 됨.
- 휴식 모드 (DMN):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고, 서로 엉뚱한 것들을 연결해서 ‘창의적인 생각’을 만듦.
개발자들이 맨날 저녁에 3시간 고민하던걸 아침에 샤워하거나 출근 5분만에 해결하는게 다 이런 이유였다.
그동안 나는 뇌라는 DB에 INSERT만 미친 듯이 날리고, INDEXING 할 시간을 안 줬던 거다.
그러니 쿼리를 날려도 결과가 늦게 나오거나 타임아웃이 나지.
2. 뇌가 파업했다 (전두엽과 코르티솔)
그리고 하나 더. 쉬지 않고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이놈이 과다 분비되면 뇌의 전두엽 기능을 마비시킨다.
전두엽이 뭐냐? 논리적 판단, 감정 조절, 계획 수립을 담당하는 뇌의 CEO다.
최근에 내가 짜증이 늘고 판단력이 흐려진 게 내 인성이 파탄 나서가 아니었다.
코르티솔 때문에 뇌가 “나 일 안 해!” 하고 문 잠그고 드러누운 거다.
실험 결과를 보니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뇌의 시냅스 연결이 실제로 끊어진다고 하더라.
오늘 내가 쉰 건 게으름이 아니라, 뇌가 물리적으로 끊어지기 직전에 살려고 발버둥 친 생존 본능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두자 마음이라도 편하게)
인간도 서버랑 똑같다
이론들을 내 상황에 대입해 보니 뼈가 아플 정도로 명확해졌다.
지난 두 달간 나는 트래픽은 폭주하는데 점검 시간 없이 서버를 돌린 셈이다.
서버도 CPU 100% 계속 찍으면 어떻게 되나?
발열 못 잡아서 쓰로틀링 걸리고, 성능 저하 오다가, 결국 뻗는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쉰답시고 잠 줄여가며 억지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상 퍼포먼스는 30%도 안 나오는 장비로 전기세만 낭비하고 있었던 거다.
오늘 하루 통으로 날렸다고 자책 안 하기로 했다.
일단 한텀 한텀 쉬어줘야… 문제 없이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종종 쿨링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쉬기로 했다.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있더라도, VSCode나 터미널은 켜지 않기로.
지금 필요한 건 디버깅이 아니라, 재부팅이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