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몰라~ 정신을 한 번 고찰해보자.

완벽주의라는 늪과 롤이 알려준 '던짐'의 미학.

Jun Noh

퇴사 날짜 박히니까, 이제 진짜 어서 빨리 밥플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슬슬 와서 잠도 잘 못잔다.

돌이켜보면 회사 일은 오히려 쿨하게 했다.

일정 맞춰야 하니까, 적당히 타협하고 “이 정도면 되죠?” 하고 넘겼지.

문제는 내 개인 프로젝트(Side Project)였다.

“이번엔 진짜 대박이다”, “개좋다ㅋㅋ” 하면서 야심 차게 git init을 때린다.

밤새서 코딩하고, 기능 붙이고, 도파민 터지는 주말을 보낸다.

딱 거기까지다. 기능 구현 다 해놓고, 배포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거기서 병이 도진다.

“아, 근데 UI가 좀 구린데? 테마 좀 만져볼까?” “로그인 붙이는 김에 소셜 로그인 5개는 지원해야 간지 아님?” “코드 구조가 좀 더러운데 리팩토링 한번 싹 하고 배포할까?”

그리고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 있는 쫄보가 외친다.

“야, 그거 올렸다가 접속자 0명이면? 개쪽아님?”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질려서 덮어버린다.

내 깃허브 레포지토리 목록 스크롤을 쭉 내리면, 저 아래 어딘가에 last commit: 2 years ago 찍힌 채 썩어가고 있는 비운의 명작들이 수두룩하다.

세상 구경도 못 해보고 private 감옥에 갇힌 내 새끼들. 미안하다.

1.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삽질, 그리고 쥬시로

얼마 전 유튜브에서 ‘쥬시로(Juicero)’ 이야기를 봤다. 1,300억 태워서 만든 400달러짜리 최첨단 착즙기. 와이파이 연결되고 4톤 압력 가한다는데, 까고 보니 사람 손으로 짜는 게 더 빠름 엔딩.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비웃는데, 난 찔려서 못 웃겠더라.

내 깃허브에 처박힌 프로젝트들이 딱 저 꼴이라서.

핵심 기능은 이미 돌아가는데, “아키텍처가 우아하지 않아서”, “확장성이 부족해서”, “그냥 비웃음 살까봐 무서워서” 혼자서 400달러짜리 껍데기만 깎고 있었던 거다.

남들은 대충 짜서 마켓에 올리고 피드백 받으면서 성장하는데, 난 방구석에서 혼자 ‘장인 정신’ 빙의해서 쥬시로를 만들고 있었다.

결국 그 프로젝트들은 주스 한 방울 못 짜보고 디지털 쓰레기가 됐다.

쥬시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쥬시로는 쓰레기를 세상에 내놓기라도 했지.

나는?

2. 소환사의 협곡이 알려준 ‘던짐’의 미학

생각해 보면 난 게임할 땐 답을 알고 있다.

친구들이랑 뇌 빼고 롤 할 때를 보자.

서로 눈치만 보며 대치하는 지루한 상황. 누가 봐도 들어가면 죽는 각이다.

근데 꼭 한 놈이 소리 지르며 뛰어든다.

“아 몰라~~ 가자!!!”

이성적으로 보면 명백한 ‘던짐’이다.

근데 신기한 건, 그 무지성 이니시 덕분에 꽉 막힌 판이 풀린다는 거다.

스킬 막 쏟아붓다 보면 의외의 대박(한타 승리)이 터지기도 하고, 설령 져도 우린 낄낄대며 다음 판을 돌린다.

“아 까비, 그래도 시원했다.” 하면서.

내 개인 프로젝트도 좀 그래야 했다.

이젠 좀 ‘던질’ 필요가 있다.

“아 몰라~ 버그 있으면 고치면 되지!” 하고 시장바닥에 내 코드를 던져 넣는 그 야생성.

그게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기능이다.

3. 일단… 하자.

개발자 노영준이 아닌, 창업자 노영준으로서의 삶도 비슷하겠지.

난 늘 내 코드가 비웃음 살까 봐, 혹은 아무도 안 쓸까 봐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Fear) 때문에 깃허브 구석에 프로젝트를 숨겨두는 거고.

미래의 유지보수?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오늘의 나는 그냥 저질러 보는 거다.

이제 곧 야생이다.

더 이상 내 프로젝트들을 깃허브 감옥에 가둬두지 않으련다.

UI가 좀 깨져도, 코드가 스파게티여도, 일단 URL이 생성되는 세상 밖으로 던질 거다.

손으로 쥐어짜서라도 주스만 나오면 되고, 한타 한 번 시원하게 열어봤으면 된 거니까.

그냥 웃으면서 엔터 쳐보자. 친구들과 PC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 몰라, 서버 터지면 다시 띄우지 뭐! 일단 배포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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