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님, 왜 가속운동하세요..?
왜... 시간이 점점 빠르게 가는거지? 에 대한 고찰
14일에 마지막으로 보안과 관련된 글을 올렸는데, 오늘은 왜 20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뭔갈 하긴 했을텐데.. 월요일에 뭘 했는지, 화요일에 뭘 했는지 도통 기억도 나질않고, 어느새 또 목요일이다.
돌이켜보면, 분명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 하루가 정말 길었다.
1교시와 2교시에 국어나 사회 같은 과목이 박혀있으면 더더욱이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정말 길었고, 많은 걸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특히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회사를 들어간 순간부터 지금까지 무슨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떨어진 것마냥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나만의 느낌적인 느낌 같은게 아니다. 분명 실제로… 시간은 가속하고 있다.
시간이 쏜살같다.
라는 말이 있다.
내가 케나다 홈스테이 마지막날 짐을 정리하고, 그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그 말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23살짜리가 느낀 시간도 쏜살과 같았는데, 지금은 화살이 더 빨라졌다.
실제 화살은 활 시위를 떠나는 순간이 제일 빠르고, 그 이후에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 감속운동 아닌가..? ㅋㅋ 암튼.
요즘 체감상 시간은 쏜살이 아니라 걍 블랙홀로 빨러들어가는 빛의 속도가 아닐까 싶다…
근데 진짜 왜 그럴까? 마땅히 쓸만한 글도 없어서 뻘짓 좀 해봤다.
ㅇㅇ 나만 그런 거 아님.
나만 이런 거 아니겠다 싶어서 좀 뒤적여봤는데, 예상대로 이거 오래된 주제였다.
심리학자, 신경과학자들이 이미 다 파놨다.
크게 세 갈래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첫 번째는 굉장히 오래된 가설인데, 시간이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에 비례해서 느껴진다는 얘기다.
5살한테 1년은 인생의 20%지만 지금의 내 경우는 이미 30대 초반이니… 약 2~3% 정도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계산해보면 5살 때의 하루가 지금 나한테는 대략 7배 정도 짧게 느껴지고 있다는 소리다.
…ㅋㅋ 그러니까 시간이 쏜살 아니라 진짜 블랙홀이다.
두 번째는 2019년에 나온 물리학적 관점의 이론이 있다.
나이 들수록 뇌의 신경망이 점점 크고 복잡해진다.
신호가 지나갈 경로가 길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뇌가 시각 이미지를 처리하는 속도 자체가 느려진다는 얘기다.
어릴 때는 같은 하루 안에 뇌가 훨씬 더 많은 프레임을 캡처했다는 것.
30fps 짜리 하루랑 10fps 짜리 하루의 두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이건 좀 슬픈 얘기다. 노화 때문에 하드웨어가 그냥 느려지는 거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 페이커는 진짜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건가..?
세 번째 이론은 신경과학 쪽의 이론인데, 이게 나에게는 가장 와닿았다.
뇌는 결국 새로움으로 시간의 길이를 잰다고 한다.
어릴 때는 다 새롭다. 처음 자전거 탄 날, 처음 학교 간 날, 처음 시험 본 날, 처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날. 뇌가 이런 걸 다 세밀하게 저장한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 세부들이 두꺼워서 “그 시절은 길었다” 라고 느낀다는 것.
근데 이런 경험들은 나이 들수록 자동화된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자리에서 밥 먹고, 같은 사람들 만난다.
뇌가 이런 걸 “봤던 거잖아” 하면서 저장 안 한다. 그냥 압축해서 던져버린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 벌써 일주일?” 이 되어있는 거다.
기억의 두께 = 시간의 두께.
이거다!
세 이론이 다 나름 맞긴 한데, 나한테 뼈아프게 와닿는 건 세 번째다.
돌이켜보면 요즘 내 하루는 진짜 판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업하고(밀린 거 없으면 운동을 좀 갔다가.. 인데 요즘은 매일이 그냥 운동이고 뭐고 컴퓨터 앞이다), 밥 먹고. 다시 개발. 저녁에 밥 먹고, 배부르니 산책 갔다가. 다시 개발… 그리고 12시 땡하면 씻고 잔다. 주말은 밀린 회사 일이나 미리 좀 할 것 좀 해놓고…
새로울 것도 없고, 어제랑 오늘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구분조차 안 간다.
그러니까 뇌가 xz -9e로 압축을 극한으로 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일주일이 3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게 문제인거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쏜살을?
화살의 속도를 늦춰보자.
찾아본 방법이 몇 개 있는데, 결국은 다 새로움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제일 강력한 게 그냥 다르게 살아보는 거다.
극적일 필요도 없다. 다른 카페 가서 커피 마시기, 안 듣던 장르 음악 듣기, 다른 길로 출근하기.
사소한 다름이라도 뇌가 “어 이건 새롭네” 하고 저장한다.
여행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이걸로 설명이 된다.
여행은 통째로 새로움 덩어리니까.
또 하나는 마음챙김 명상이다.
명상 숙련자들이 실제로 시간을 더 길게 지각한다는 연구가 있다.
60초만 멈춰서 심호흡 세 번 하고 몸이랑 주변을 관찰해도 효과가 있다.
그리고 사진이나 일기로 세부를 남기는 것. 회상할 때 참조할 앵커가 많아지면 그 기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는 얘기.
이건 좀 이해가 간다. 지금 지난주에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는 이유가, 사진도 없고 메모도 없어서일지도.
마지막은 뭐라도 새 걸 배우는 것. 새 언어, 새 악기, 새 기술.
뇌가 새 경로를 만드는 순간마다 시간이 두꺼워진다.
…
결국 다 새로움을 만들라는 얘기고, 그거 만들려면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더 짜내야 하니까… 암튼 쉽지 않음.
마치며
정리하고 나니까 결론은 결국 하나였다.
나는 새로움을 거의 안 만들면서 살고 있다.
같은 프로젝트, 같은 코드,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
뇌한테 “여기 저장할 만한 게 있어” 라고 알려주지 않고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통째로 압축돼서 사라지고 있는 거다.
내일부터 뭐 하나만 다르게 해봐야겠다.
일부러 시간 내서 카페 가서 커피를 사오던가, 산책도 안 가본 길로 간다던가..(근데 있나…? 20년도 넘게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ㅜㅜ)
아무튼 사진도 좀 찍고, 짧게라도 메모 남기고.
시간이 진짜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으면, 그거 막을 방법은 결국 하나인 거 같다.
뇌한테 “여기 뭔가 있어” 라고 알려주는 것.
…근데 이거 정리하면서도 또 한 시간이 그냥 사라진 거 같은데.
나는 언제쯤 이 화살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일단 밤에 일기나 좀 써보자.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