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크리스마스 선물의 설렘

크리스마스 이브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떠오른, 주방 베란다 뒤에 있던 옛날 생각.

Jun Noh

내가 꾸미지 않으면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

20대 후반 넘어가면서부터는 크리스마스가 그냥 ‘공휴일 A’ 정도의 느낌이다.

어릴 땐 길거리에 트리가 보이면 “와, 크리스마스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직접 트리를 꺼내서 먼지 털고 전구 감지 않으면 크리스마스가 오질 않는다.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니라 내가 챙겨야 겨우 생색이라도 나는 나이가 된 거지.

그래서 오늘은 퇴근하고 저녁에 작업도 안 했다.

아침에 했으면 됐다… 내일 하면 되지, 회사도 안가는데

그래도 블로그 글 작성 기록은 깨기 싫어서, 이것 저것 생각하다보니 아주 옛날 기억이 하나 툭 튀어나올랐다.


세탁기 뒤의 “과자 선물 세트”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비싼 게임기도 아니고, 유행하던 가면라이더 장난감 혹은 유희왕 카드 덱도 아니었다.

그 시절 롯데마트 같은 데서 팔던, 예쁜 박스에 담긴 재고 처리 과자가 들어가 있는 과자 선물 세트였다.

그날도 아마 이브의 저녁이었을 거다.

집안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다가(원래 좀 산만한 애들이 그렇다 ㅋㅋ), 주방쪽 베란다 어디 구석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박스를 발견했다.

어린 마음에 신이 나서 어머니께 뛰어갔다. (사실 내가 발견을 한건지, 주신건지 잘 기억이… 안난다. 주신거라면, 내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긴 하다.)

“엄마! 저기 뒤에 과자 박스 있는데 이거 내 거야? 나 먹어도 돼?” 라고 물어봤을 때, 어머니 표정이 참 묘했다.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응, 그게 네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왜 울었을까

그 말을 듣는데, 기쁜 게 아니라 갑자기 서러움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내 기억 속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내가 일 년 내내 노래를 부르던 ‘진짜 장난감’을 받는 날이었다.

근데 고작 과자 몇 봉지 든 박스가 내 ‘귀중한’ 선물이라니?

“이게 어떻게 선물이야! 장난감 아니잖아!” 어린 마음에 소리 지르며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당황하면서도 계속 그게 선물이라고 하셨고,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한참을 더 꺽꺽대며 울었던 것 같다.

그 뒤에 다른 선물을 더 받았는지, 아니면 그냥 과자를 까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근데 지금 와서 그때 어머니의 그 어렴풋한 표정을 떠올려보면…

그건 아마 우연히 발견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나 몰래 숨겨두셨던 ‘진짜’ 선물이었을 거다.

(내일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아무튼 그 때 당시에는 그랬다.

크리스마스는 그 만큼 정말 1년 내내 기다리던 날이었고, 결코 실망하지 않았던 날이었어서, 더 그렇게 서러움이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느낌의 크리스마스

언젠가부터인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설렘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주고받는 기프티콘 말고… 이브날 밤에 잠도 못 자고 설레다가, 새벽에 눈 뜨자마자 머리맡을 더듬거리던 그 감각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 어머니와 거의 비슷한 나이가 됐다. (아마 대여섯 살 차이 정도 날 거다.)

나도 이제 몇 년만 더 있으면 그 머리맡에 선물을 몰래 갖다 놓는 산타 노릇을 해야 할 텐데…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ㅋㅋ. 과자 세트 들고 왔다가 애가 울어버리면 나도 같이 울어버릴지도 모르지. 그 시절 어머니는 그 실망 섞인 울음소리를 어떻게 견디셨을까.

뭔가, “으른”의 크리스마스는 마냥 좋지만은 않은 그런 날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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