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나는 더 이상 코드를 공부하지 않는다.

책장에 쌓인 개발 서적들이 의미 없어진 이유. 내가 바라본 지식 소유의 종말과 경험의 시대, 그리고 왜? 회사를 나와서 1인 개발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Jun Noh

지난 5년간, 나는 꽤 성실한 학생이자 엔지니어였다.

내 책장에는 수십 권의 개발 서적이 꽂혀 있다.

사실 나는 공식 문서(Official Docs)보다 ‘종이책’을 선호했다.

공식 문서는 건조한 ‘사용법(How)‘만 나열되어 있지만, 책에는 저자가 수많은 밤을 새우며 얻은 경험적 통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 AI 시대, 특히 Agent가 등장한 이후,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제 내가 하는 ‘기술 공부’, 그리고 책의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가성비가 최악인 투자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갑자기 잘 가고 있다가, 방향을 틀어 야생의 1인 사업자로 뛰쳐나왔는지에 대한 다짐, 혹은 핑계나 변명을 좀 떠들어 보려고 한다.

1. 추론의 외주화: “경험마저 학습되었는가?”

ChatGPT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책을 샀던 이유는 명확했다. 저자의 삽질을 돈 주고 사기 위해서였다. “이 설정은 실무에서 메모리 누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같은 문장은 공식 문서엔 없다.

오직 사람의 경험 속에만 존재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더 이상 개발 서적을 사지 않는다. AI가 그 ‘경험적 지식’마저 몽땅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천만 건의 블로그, StackOverflow의 토론, Post-Mortem(사후 회고) 문서들이 모두 AI의 학습 데이터가 되었다. 이제 AI에게 물어보면, 20년 차 시니어 개발자가 겪었을 법한 경험적 조언을 3초 만에 쏟아낸다.

AWS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현재 트래픽 패턴(A)과 예산(B)을 고려해서 최적의 아키텍처로 리팩토링해줘.

이 질문에 대해 AI는 내가 책 몇 권을 읽고 정리해야 할 내용을 단숨에, 그것도 내 상황에 딱 맞춰 추론해낸다.

신입 시절 선배들이나 유튜브의 인도인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복붙 하지 말고 원리를 이해해. 네가 짠 코드에 대한 논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네 것이 되지.

맞는 말이다. 아니, 맞는 말이었다.

이제는 되물어야 한다.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있나? 알고 있는 내용도 AI 한테 물어보면 더 쩌는 걸 가져오는데?

어차피 내 뇌보다 AI가 더 방대한 경험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데, 비싼 생물학적 뇌 용량을 지식 저장소로 쓰는 건 비효율의 극치가 아닐까?

2. 남이 준 문제를 푸는 건, 이제 끝났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다.

기획서가 내려오고, Jira 티켓이 생성되면, 나는 그것을 가장 효율적인 코드로 변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이 과정을 냉정하게 뜯어보니 그냥 AI 모델 하위호환이다. 아니 호환 조차 되는 지 모르겠다.

입력값(Spec)과 출력값(Feature)이 명확한 업무. 이건 AI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영역이 아닌가?

1년 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기감은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시나리오 (나는 원래가 Worst case scenario를 짜는 게 습관이다.) 로 다가왔다.

지금 당장은 AI가 짠 코드를 검수하고 아키텍처를 결정할 ‘시니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5년 차’ 개발자다. 소위 말하는 조직의 ‘허리’ 라인이다. 회사 시스템 안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진짜 ‘시니어’가 되려면, 최소 3~5년은 더 묵묵히 연차를 쌓고 정치도 하며 버텨야 한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내 승진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회사에서 따뜻한 월급을 받으며 천천히 레벨업을 하는 동안, AI는 지수함수적으로 똑똑해지고 있다.

5년 뒤, 내가 드디어 시니어 명함을 달 때쯤이면?

이미 AI가 시니어의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정쩡한 미들(Middle)급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안전한 울타리를 걷어차고 야생으로 나와, 온몸으로 실패하며 스스로를 시니어로 ‘강제 레벨업’ 시키기로.

누군가 시켜줘서 되는 시니어가 아니라, 내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어있는 ‘실전형 시니어’.

그것만이 AI 속도전에서 살아남는 길이라 판단했다.

3. ‘경험’이라는 최후의 방어선

그래서 나는 1인 개발자가 되어 야생으로 나왔다.

이곳에는 친절한 기획서도, 명확한 티켓도 없다. 아무도 나에게 문제를 내주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틈새다.

세상에 널린 수많은 불편함 중에서 “어떤 문제가 진짜 풀 가치가 있는가?”를 정의하는 것.

물론 언젠가는 AI가 이것조차 나보다 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데이터 더미 속에는 없는 사람들의 미묘한 욕망을 읽어내고, 불확실한 가능성에 내 시간을 베팅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

감각결단만큼은 아직 인간인 내가 조금 더 우위에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왜 지금 경험이 중요한가?

AI의 한계: AI는 과거의 데이터(Web Text)를 학습한다. 즉,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의 집합체다.

나의 경쟁력: 나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시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세상에 없는 데이터를 몸으로 만든다.

고객에게 거절당하는 아픔, 예상치 못한 서버 장애의 멘붕, 마케팅 실패의 쓰라림… 이 처절한 실전 경험들이야말로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 데이터(Unique Dataset)가 된다.

4. ‘정답 자판기’가 아니라 ‘나만의 R&D 센터’

그렇다고 기술을 버린 건 아니다. 나는 AI를 대하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지금까지 나는 AI를 내 생각을 대신 해주는 대리인(Outsourcing)으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가설을 검증하는 R&D 센터로 활용한다.

  • Before (생각의 외주화): “이 기능 만들어줘.” (결과만 받음 → 뇌의 퇴화)
  • After (R&D 센터 활용): “내가 이런 가설(Hypothesis)을 세웠는데, 네가 가진 방대한 지식으로 맹점(Blind spot)을 찾아내고,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검증해봐.”

문법(Syntax)은 AI에게 맡기지만, 맥락방향성은 내가 쥔다.

나는 이제 코드를 짜는 시간을 아껴서, 더 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법을 공부한다.

이것은 내 사고력을 AI라는 엔진에 태워 증폭시키는 과정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찍먹 해봐야겠지?

마침표: 새로운 공부의 시작

나는 책장의 책들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제 내가 읽어야 할 것은 ‘개발 서적’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나는 이제 Terraform 문법책을 덮었다. 대신 나만의 문제를 정의하고, 내 머릿속에 있는 R&D 센터를 풀가동시켜 그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뚝딱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기계적인 암기가 아닌, 통찰과 경험이라는 진짜 공부를.

AI 시대, 당신은 ‘지식의 소유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경험의 설계자’가 될 것인가?

나는 오늘도 AI와 치열하게 토론하며, 나만의 비즈니스를 쌓아 올린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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