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는 왜 항상 잘났을까

남의 인생은 잘 편집된 하이라이트, 내 인생은 무삭제 풀버전이라...

Jun Noh

어제 밤에 침대에서 잠이 안 와서 한참 천장을 보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친아들은 왜 항상 잘났을까?”

엄친아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한 게 한 20년 전쯤 됐나. 그 즈음부터 지금까지, 내 친구들이 이 단어 앞에 자유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초등학생 때는 “옆집 아무개는 이번 시험에 100점 맞았다더라.” 였고, 20대엔 “엄마 친구 아들은 이번에 연세대 들어갔다더라.” 였고, 지금은 “엄마 친구 아들은 결혼해서 애도 둘이고 집도 샀다더라.” 다.

근데 어제 침대에서 문득 의심이 들었다.

진짜 그렇게 다 잘난 게 맞나?

아니, 통계적으로 좀 이상하지 않나. 우리나라 인구 분포를 보면 정규분포를 따를 텐데, 왜 우리 엄마가 듣고 오는 옆집 아들들은 죄다 분포의 우측 끝에서만 살고 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이 떠올랐다.

“혹시 우리 어머니가 다니시던 모임에서 떠돌던 소문들은, 사실은 인스타그램이랑 똑같은 거 아닐까?“

1. 누가 자기 자식 망한 얘기를 떠벌리고 다니나

생각해 보자.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 모임에서 두어 시간 수다 떨고 들어오시면, 나는 곧 ”○○ 엄마가 그러는데 그 집 아들이 말이야~” 같은 도입의 소리를 한바탕 들어야 했다.

그 모임에서 어제 우리 엄마가 들은 얘기가 100개라고 하면, 그 100개의 분포가 진짜로 그 친구분들 자식들의 평균 인생을 반영할까?

당연히 아니다.

A 아주머니가 자식이 막 대기업 합격했으면 모임에 나가서 “우리 애가 이번에 ○○ 들어갔어~” 하고 자랑한다.

근데 자식이 백수 1년 차로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면? 그 얘기는 절대 안 한다. 묻기 전엔 안 꺼낸다. 묻는다고 해도 “뭐, 잘 지내지.” 정도로 어물쩍 넘긴다.

B 아주머니의 자식이 결혼해서 집을 샀으면? 자랑한다. 근데 같은 분의 자식이 이혼했으면? 그 얘기는 모임에서 안 한다. 정말 친한 한두 명한테만 한숨 섞어서 흘릴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그날 모임에서 듣는 100개의 얘기는,

  • 자랑하고 싶은 90% + 평범한 근황 9% + 진짜 친한 사이끼리 흘리는 진솔한 1%

대충 이런 비율 아닐까.

평범한 인생의 90%, 망한 케이스의 9%는 애초에 그 모임 테이블 위에 떠오르질 않는다.

못 사는 게 아니라, 공유가 안 되는 거다.

엄마 머릿속에 들어가는 데이터셋 자체가 이미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얘기다.

2.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조인데?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이거, 인스타그램이랑 완전 똑같잖아.”

내 인스타 피드를 봐도 그렇다. 친구들이 올리는 건:

  • 여행 가서 찍은 사진
  • 비싼 식당 음식 사진
  • 새로 산 차/시계/가방
  • 결혼식, 돌잔치, 승진
  • 운동 후 보디 프로필

근데 친구들이 안 올리는 건:

  • 통장 잔고 마이너스
  • 부부싸움
  • 다이어트 실패
  • 그냥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화요일 저녁

이거 본 적 없지 않나. 평생.

정지우 작가의 책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책이 있는데, 제목 그 자체가 결론이다.

SNS에는 절망이 없다. 우울도 없고, 실패도 없고, 그냥 별일 없는 평범한 화요일도 없다. 그러니 SNS만 보고 있으면 세상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사는데 나만 안 그런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00년대 부녀회와 2020년대 인스타그램, 20년의 시간차에 매체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토씨 하나 안 변했던 거다.

다른 점은 단 하나.

부녀회는 입으로 자랑했고, 인스타는 사진으로 자랑한다. 그리고 인스타는 한 번 자랑할 때 몇십, 몇백 명이 동시에 본다는 점. 효율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3. 이미 심리학 용어가 있다.

이쯤 되니 궁금해서 좀 찾아봤다. 역시나, 이런 거 좋아하는 형님들이 이미 다 이름을 붙여놨다.

선택 편향

샘플이 무작위가 아니라 어떤 기준에 의해 골라진 상태. 부녀회 테이블에 올라오는 자식 얘기는 “자랑할 만한가?” 라는 필터를 통과한 결과물이다. 모집단(전체 자식들) 의 평균이랑 같을 리가 없다.

생존자 편향

성공한 케이스만 보이고 실패한 케이스는 사라져서 안 보임. 망한 자식들은 모임 화제에서 “사라진다.” 보이지 않으니까 통계에서 빠지고, 결국 보이는 건 다 잘난 케이스뿐이다.

사회 비교 이론

1954년에 페스팅거가 제안한 건데,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거다. 그리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면 우울해지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낀다.(Like 이혼숙려캠프를 보는 나… 어쩐지 개재밌더라)

엄친아 얘기가 우리를 묘하게 짜증 나게 하는 게 그래서다. 들을 때마다 강제 상향 비교 당하는 거니까.

다원적 무지

실은 모두가 비슷한 처지인데, 표현되지 않으니까 “나만 이런 줄” 알고 사는 현상.

부녀회로 치환하면 — 사실 친구분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식이 평범하거나 좀 안 풀리고 있을 텐데, 다들 자랑만 골라서 하니까 모두가 “나만 우리 애가 이러나?” 하고 산다.

이거 알고 나니까 좀 짠하다.

우리 엄마도 그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부녀회 테이블 앞에서 다른 엄마들 자랑 들으면서 속으로 “왜 우리 애만 이래…” 했을 거 아닌가. 근데 그 다른 엄마들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을 거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자기 자식 자랑만 들고 나오니까, 모두가 동시에 자기만 손해 보는 줄 알고 사는 거다.

4.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글의 흔한 결론은 “SNS를 끊자!” 인데, 솔직히 그건 좀 식상하고 비현실적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SNS 끊고 사는 게 가능한가? 카톡방도 SNS고, 유튜브 댓글도 SNS고, 회사 단톡방도 어떻게 보면 SNS다. 어디까지 끊을 건데. 그리고 매체를 끊는다고 해도, 부녀회 시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매체가 사라져도 인간이 모이면 어디서든 자랑 필터는 작동한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봤는데, 결국 두 가지였다.

첫째, “들리는 정보는 무조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라는 자각

이게 핵심이다.

부녀회든 인스타든 카톡방이든, 들리는 얘기는 절대 모집단을 대표하지 않는다.

자랑이 통과한 필터, 사진이 통과한 필터, 캡션이 통과한 필터를 다 거친 결과물이다.

이걸 의식하면, 엄친아 얘기를 들어도 “음 그래, 그 집은 그 사진을 골랐구나” 정도로 무덤덤해진다. 친구가 인스타에 올린 발리 여행 사진을 봐도 “그 여행 가서 와이파이 안 터지고 배탈 났던 얘기는 안 올렸겠지” 하는 여유가 생긴다.

둘째, 실패와 평범함을 굳이 공유하는 사람들

이 비대칭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가 일부러 자기 평범함과 실패를 공유하는 거다. 그게 한 명 두 명 늘어나면 “아, 다들 이러고 사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퍼진다.

메인 페이지 에 ”🪦 묘지” 카테고리를 둔 것도 사실 그 일환이다. 망한 프로젝트 자랑(?)하는 코너. 1인 개발자 한답시고 폼 잡고 시작했던 서비스들이 줄줄이 망한 기록이 거기 박혀 있다.

누가 이걸 보고 “아 저 사람도 저렇게 망하는구나” 하고 조금이라도 위안 얻으면 그게 이 묘지의 존재 이유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어제 운전하다 든 뻘생각 하나 가지고 천 자 넘게 쓰고 있는 게 사실 좀 그렇긴한데, 쨋든 글은 쓴거니까..ㅋㅋ


마치며

엄친아를 풀어 쓰면 결국 한 줄이다.

“남의 인생은 잘 편집된 하이라이트이고, 내 인생은 무삭제 풀버전이다.”

당연하다. 남의 화장실 안 모습은 안 보이고, 내 화장실 안 모습은 매일 본다.

그러니 비교가 될 리가 없다.

그 엄친아도 사실은 그 집 어딘가에서 뭔가 망치고 있을 거다. 우리 엄마가 미용실에서 그 얘기는 못 듣고 올 뿐이다.

이걸 깨달은 다음부턴 엄친아 얘기 들어도 좀 덜 짜증 난다. 진짜 다 잘난 게 아니라, 잘난 얘기만 모임 테이블에 떠오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인스타도 너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친구 발리 여행 보고 부러워할 시간에, 우리 집 화장실 청소나 합시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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