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관리는 생존이다. '시간지도'를 읽고...
왜 시간은 많아졌는데, 생산성은 더 떨어졌지?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닫는다.
보험 들러 가자.
내 서비스고, 1인 개발자고 뭐고… 망하면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기도 하고.. 간만에 대학교 동기들을 만났는데, 다들 이직은 초고수들이라 “일단 공고가 뜨면 써라” 를 너무 강조하길래… 그러려면 만료된 영어 성적부터 갱신해놓고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바로 오픽 수험서를 사러 서점에 갔다.
수험서를 정하고, 시간이 조금 뜨길래. 도서 검색대에서 “시간관리” 4글자를 검색해봤다.
요즘 회사를 안가니 시간은 많아졌는데, 막상 시간이 3배 많아졌다고 내 생산성이 3배가 늘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나만 이런가 싶었다.
근데 뭐, 별 좋아 보이는 책은 안나왔다.
스크롤을 내리고 페이지를 4/5까지 넘겼는데, 시간지도 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남은 재고는 1이라고 뜨는데, 문헌 위치가… “직원에게 문의” 였다.
? 의아했지만 일단 직원분을 부르고 같이 책을 찾아 나섰다.
직원분은 관리자 모니터를 한 번 보더니, 나를 자기계발서적 코너 어디 깊숙한 구석으로 데러가시고 코너 아래쪽 서랍에서 책을 꺼내어 주셨다.
그냥 그 분위기 때문인지, 책의 제목 때문인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이 책은, 제목처럼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보물지도’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홀린 듯 사 와서 저녁을 먹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덮을 때쯤엔, 퇴사 후 나를 짓누르던 막연한 불안감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또, 그냥 뻔한 내용의 포장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첫 장을 읽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서점 매대를 가득 채운 자기계발서 특유의 화법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 해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가 성장의 밑거름이다”…
누가 모를까?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에, 이미 겪을 만큼 겪었고 알 만큼 아는 내용들이다.
그런 뻔한 소리였다면 아마 1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을 거다.
하지만 이 책은 뜬구름 잡는 ‘마인드셋’ 대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전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개발자의 계획 vs 나라는 인간의 계획
회사를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큰 적은 ‘막연함’이었다.
“내가 과연 혼자서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Jira 티켓을 끊고 간트 차트를 그리며 내 ‘프로젝트’는 관리해 왔지만, 정작 내 ‘하루’는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표를 세우면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에서는 아침마다 투두(To-Do) 리스트를 ‘손으로’ 적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순히 할 일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내 뇌에 각인을 시키는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몇 주간 계획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다.
새해 첫 며칠은 의욕적으로 투두 리스트를 적었지만, 어느샌가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관성에 젖어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명확했다. 머릿속 계획은 휘발되었고, 불안감만 남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다. 오늘부터 다시 펜을 들고 종이에 적기로 했다.
그리고 또 와닿았던 건 조력자를 확보하라는 대목이었다.
혼자라는 생각에 갇히지 말고, 계획을 글로 쓰고 말로 뱉어야 한다. 아내에게나 친구, 지인에게 내일의 계획을 공유하고 응원받는 과정.
그게 단순한 감정적 교류를 넘어, 내 실행력을 높이는 핵심 장치라는 걸 깨달았다.
쪽팔려서라도 지키게 되니까.
일주일, 혹은 하루 단위의 계획의 진행 상황 보고… 어? 이거 완전…?
시작이 반인 심리학적 이유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나온다.
- A그룹: 빈칸이 8개인 쿠폰 제공
- B그룹: 빈칸이 10개지만, 도장 2개가 이미 찍힌 쿠폰 제공
결과는 놀랍게도 B그룹의 회수율이 2배나 높았다. 남은 빈칸은 똑같이 8개인데도 말이다.
사람은 ‘0’에서 시작할 때보다, 이미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고 느낄 때 훨씬 더 강한 동기를 얻는다.
내 개발 루틴도 그랬다.
완벽한 아키텍처를 구상하느라 시작을 미루기보다, 일단 git init 하고 README.md 한 줄이라도 적어두는 것.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일단 도장 하나를 찍어두는 것.
그것이 내 서비스 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트리거가 될 것이다.
밤 9시 30분, 당신의 뇌는 ‘만취’ 상태다
이 책에서 가장 뼈를 맞았고, 당장 내일부터 적용하기로 마음먹은 파트다.
“기상 후 15시간이 지나면, 작업 능력은 술을 마실 때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나는 보통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다.
이 공식에 대입하면, 밤 9시 30분 이후의 나는 만취 상태나 다름없다.
그동안 늦은 밤까지 “오늘 이거 해결 못 하면 안 자”라는 객기로 모니터를 부여잡고 있어도 해결되지 않던 버그들.
저녁만 되면 급격히 떨어지던 학습 효율이 단번에 설명되었다.
나는 그동안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술 취한 뇌를 붙잡고 억지로 코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술 취한 상태로 코딩해봤자 다음 날 보면 “이 새끼 뭐지?” 소리 나오는 코드만 짤 뿐이다. 쉬는 게 답이다.
그렇다면 이 한정된 ‘맨정신’의 시간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하루의 승패가 기상 직후 아침 15분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며 4가지 루틴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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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쬐기: 커튼을 걷고 세로토닌을 충전해 뇌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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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샤워: 전신이 힘들다면 ‘종아리만이라도’ 찬물을 끼얹어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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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일 적기: 긍정적인 마인드셋으로 하루의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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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 읽기: 마음의 양식을 채운다.
이 4가지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5분이다. 이 짧은 시간이 나머지 15시간의 밀도를 결정한다.
내일부터는 아침 15분으로 하루를 확실하게 깨우고, 밤 9시 30분이 되면 과감하게 노트북을 덮기로 했다.
취중 코딩은 이제 그만.
마치며: 다시, 기본으로
새해가 시작되고 2주 동안,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다닐 때 틈틈이 개인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이 더 생산성이 좋았던 것 같다.
온전히 내 시간이 주어지자, 오히려 성과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짓눌러 시간 관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제 욕심을 버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려 한다.
[내일부터의 Action Plan]
- 확실한 단기 목표 2가지만 잡기: 이것저것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하지 말자.
- Morning & Evening: 아침에는 계획하고(Write), 저녁에는 점검(Review)한다.
- 15시간의 법칙 준수: 21:30 이후에는 뇌를 쉬게 한다. 휴식도 개발의 일부다.
이 책은 나에게 ‘더 빨리 달리는 법’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는 지도를 보여주었다.
이제 그 지도를 따라 걸을 차례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