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없는데, 퇴근도 없다: 1인 프리랜서로의 일주일을 지내고...

자율근무의 자유를 얻었지만, 시간의 밀도는 더 가혹해졌다. 1인 개발자로 살며 깨달은 시간의 무게와 자율의 공포

Jun Noh

새해 첫 주 월요일.

회사와의 계약을 변경하고, 자율 출퇴근에 재택 근무를 하는. 이제 진짜 1인 프리랜서이자 개발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나는 ‘시간 부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회사 일이야 어차피 하루에 한, 두 시간짜리 일들이였고 원래도… 그러고 나면 온전히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좀 여유… 롭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가혹한 시간의 밀도 속에 살고 있었다.

오늘은 지난 일주일간 1인 개발자로 살며 뼈저리게 느낀 시간의 무게 와 자율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남의 일’을 할 때와 ‘내 일’을 할 때의 시간차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때를 떠올려 본다.

업무가 조금 한가해지거나 빌드 시간을 기다릴 때면 습관적으로 카톡을 켰다.

아무 의미 없는 이모티콘도 단톡방에 던져보고, 별 쓰잘떼기 없는 말들로 시간을 죽였다.

그때 나에게 시간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 내내, 내가 카톡을 확인한 횟수는 하루에 5번을 넘지 않았던 거 같다.

카톡이 귀찮다거나,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시간이 없다.

기획서 한 줄, 심사 준비, 로그 정리, 부하테스트, 새 프로젝트의 샘플 코드 작성.. 등등 그냥 할 일이 산사태마냥 쏟아진다.

남이 시킨 일을 할 때는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지만, 내 일을 하니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참게 된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은, 내가 그 시간의 주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공포스러울 만큼 무거운 진실이 된다.

착각: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오만

시간이 금이라면서, 나는 최근 일주일이라는 금 같은 시간을 통으로 날려 먹었다.

새 프로젝트 기획에 2D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필요했고, “개발자니까 툴 배우면 금방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Rive포토샵을 붙잡고 씨름했다.

Rive 삽질기: 일주일의 교훈

일주일 동안 눈알이 빠져라 작업해서 3개 캐릭터의 15개 동작을 구현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일주일을 갈아 넣은 결과물보다, 전문 디자이너가 하루 만에 만든 결과물이 훨씬 퀄리티가 높을 것이 뻔했다. (물론, 샘플로 개발을 그냥 진행하기에는 매우 훌륭하다.)

여기서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R&D와 구현을 혼동하지 말 것

R&D(할 줄 아는 것)‘와 ‘구현(잘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1인 개발자는 PM이자 기획자여야 한다.

내가 직접 픽셀을 찍고 있을 게 아니라,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위해 외주를 줄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 시간당 단가를 계산해 봤을 때, 엉성한 리소스를 붙잡고 있는 건 회사 경영상(?) 막대한 손해였다.

결국 오픈 전 캐릭터 리소스는 외주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일주일 전에 했다면, 내 서비스는 지금보다 일주일 더 앞서 나갔을 것이다.

교훈:

  • 내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은 다르다
  • 전문가의 하루가 내 일주일보다 낫다면, 그건 투자지 낭비가 아니다
  • 1인 개발자의 진짜 능력은 “다 할 수 있음”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지 아는 것”이다

출근이 없다는 건, 퇴근도 없다는 뜻이다

자율근무의 가장 큰 함정은 마감(Deadline)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는 싫든 좋든 6시, 7시가 되면 사무실 불이 꺼지거나 눈치가 보여서라도 퇴근을 한다.

하지만 집구석 1인 개발자에겐 퇴근 알람이 없다.

눈을 뜨면 바로 의자에 앉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앉는다.

사실 밥 먹을 시간도 아깝게 느껴진다.

정신을 차려보면 밤 12시다. 하루 12~14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일이 끝나질 않는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니 멈추는 기준도 모호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곁에 있는 사람

이 생활이 지속되니 부작용이 터져 나온다.

가장 큰 피해자는 내 곁의 와이프다.

같은 집에 있는데도 대화할 시간이 없다.

14시간씩 일해도 피곤한 줄 모를 만큼 몰입하는 경험은 개발자로서 축복이다.

하지만 이 열정이 지속 가능하려면, 역설적으로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할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강제 퇴근’을 도입한다

이대로 가다간 서비스 런칭 전에 내가 먼저 번아웃으로 쓰러지거나, 가정의 평화가 깨질 것 같다.

1인 개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런가? 근데 지금 사실 넘어지면 죽는 뒤 없는 선택을 하긴 해서.. 더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쉬어야 숨도 좀 돌리고 다시 달릴텐데.

그래서 나만의 강제 오프(Forced Off) 규칙을 세우기로 했다.

나의 강제 퇴근 규칙

  1. 오후 9시 셧다운
    일이 남았든 아니든, 9시가 되면 무조건 컴퓨터를 끈다.

  2. 주말 반나절 로그오프
    최소한 일요일 오후만큼은 개발자가 아닌 ‘남편’으로 돌아간다.

  3. 전문가는 전문가에게
    디자인이나 사운드 등 내가 ‘흉내’만 낼 수 있는 영역은 과감하게 돈을 쓴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계약직 전환을 한 순간부터는 모 아니면 도다. 애매한 절약은 오히려 독이 될 거 같다.

    내 시간은 코딩과 기획에 쓴다.

마치며: 멈추는 법을 배워야 더 멀리 간다

‘시간 부자’가 되려고 회사를 나왔는데, 정작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남의 일을 할 때는 몰랐던 진짜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됐으니까.

다만, 이 즐거움이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멈춰야 한다.

그게 이 긴 레이스를 완주하는 가장 빠른 길일 테니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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